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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함께하시는 사랑 (영상녹화가 되지 않아서 설교원고를 올립니다) 최치호 목사 20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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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로마서8:35-39절 개역개정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설교 영상 녹화가 되지 않아서 설교 원고를 올립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해변과 같습니다. 얘기치 못한 시련이 닥쳐올 때,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고 때로는 굳게 붙잡았던 신앙마저 흔들리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정말 나와 함께 계시는가?”라는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절규처럼 터져 나올 때, 우리는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입니다.

여기,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주님과 함께 걸어온 인생길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모래사장 위에는 두 쌍의 발자국이 선명히 찍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에는 발자국이 한 쌍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슬픔에 잠겨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언제나 저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제가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주님은 제 곁을 떠나셨나이까?”

그때, 너무나도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쓰러져 있을 때, 내가 너를 업고 걸어갔기 때문이란다.”

하나의 발자국은 그가 홀로 걸어간 흔적이 아니라, 차마 걷지 못하는 그를 업고 가신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 속에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사랑하시는 분입니다(13:1). 오늘 우리는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끝까지 함께하시는 사랑이 과연 어떤 사랑인지, 그 놀라운 약속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35-37).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시련의 파도 앞에서 그저 주저앉아 있도록 내버려 두는 수동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닥친 모든 역경과 고난을 넉넉히 이기게하는 가장 강력하고 능동적인 힘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35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는 이어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일곱 가지 시련을 나열합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헐벗음), 위험,

여기서 환난은 외부에서 우리를 덮쳐오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반면 곤고는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깊은 불안과 염려, 괴로움을 뜻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밖으로는 압박을 받고 안으로는 무너지는 이중의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받는 박해, 생존을 위협하는 굶주림과 헐벗음, 그리고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위험 속에서 우리는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본문 37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이기는 승리가 아닙니다. 이는 원어의 의미 그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뜻합니다. 마치 코리안 시리즈나 월드 시리즈의 마지막 경기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 끝의 승리가 아니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으로 완벽하게 제압하는 완승을 의미합니다.

이 압도적인 승리의 가장 위대한 증인은 바로 사도 바울 자신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상상조차 힘든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일들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수없이 옥에 갇히고, 죽을 만큼 매를 맞았으며, 파선하여 깊은 바다에서 밤낮을 지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었습니다.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등 온갖 위험 속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습니다(고후 11:23-27). 마지막에는 일곱 번째 시련이었던 칼에 목이 베어 순교하기까지 했습니다그 어떤 시련도 그를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한 힘의 원천은 단 하나, 바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기게 하는 이 사랑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약속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랑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그 어떤 시련도 이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2.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8-39).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한 시련을 이기게 하는 힘일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 포함한 모든 차원을 초월하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관계의 약속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38)

그는 이어서 그 어떤 존재도, 그 어떤 상황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가 나열하는 목록은 이 사랑의 절대성을 보여줍니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 사망이나 생명이나, 영적인 권세를 넘어: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모든 피조물을 넘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죽음의 공포도, 삶의 고단함도,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나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재의 일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차원과 존재를 총망라해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이 절대적인 약속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한번 확증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 그리고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안전하게 붙들려 있습니다.

이토록 강력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근거는 우리의 자격이나 노력, 혹은 어떠한 업적에 있지 않습니다.

로마서 58절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사랑은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남겼을 때나, 세상에서 잘 나갈 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연약하고 자격 없는 죄인이었을 때, 이미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은 영원히 확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 안에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시련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약속임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진리를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고 누리는 것입니다.

서론에서 나누었던 발자국이야기에는 새 버전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한 사람이 주님과 함께 모래사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발자국이 가지런하지 않고,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지그재그로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우리가 왜 이렇게 길을 헤매고 있지요? 이 발자국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웃으시며 따뜻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얘야, 둘이 함께 가다 보니 너무 좋아서 춤을 추었단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 여정은 고난 속에서 주님께 업혀가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주님과 함께 걷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좋아서, 세상의 시선이나 정해진 길에 얽매이지 않고 기쁨의 춤을 추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고난을 견디는 것을 넘어, 주님과의 동행 그 자체를 기뻐하며 춤출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입니다.

다가오는 한 주간, 여러분의 삶의 발자국이 어떻게 새겨지기를 원하십니까?

시련 속에서 홀로 힘겹게 남기는 발자국이 아니라, 나를 업고 가시는 주님의 깊은 발자국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를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기쁨으로 춤추며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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